엄마의 손바닥에
적혀 있던 질문들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 2차 도전신청서를 썼습니다. 아이템은 지난 7월에 출시한 시니어 전용 카메라앱 ‘엄마의 사진’. 신청서를 쓰는 동안, 만들 때는 몰랐던 걸 하나 정리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소외는 기기를 못 다뤄서 생기는 게 아니라, 연결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 생긴다는 것.
저희 엄마는 손바닥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늘 손바닥이 볼펜 자국으로 빼곡합니다. 그러다 글자가 지워져 버리면 뭘 적었는지 기억해내느라 한참을 고생하십니다. 제가 고향에 내려가는 날이면, 저에게 물어볼 것들을 미리 손바닥에 빼곡히 적어두시기도 합니다.
엄마의 손바닥에 새겨지던 볼펜 자국, 그 어려운 질문이 사진 한 장으로 바뀝니다.
01아무 설명 없이 날아오던 사진들
영양제, 약봉투, 홈쇼핑 화면, 고지서. 이런 사진들이 아무 설명 없이 메신저로 날아오곤 했습니다.
사도 되는지 묻는 것인지, 그냥 보고 싶어 보내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전화를 걸어 되물어야 했습니다. 문제는 그마저도 자주 까먹었다는 겁니다. 며칠이 지나서야 생각나 연락드린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엄마의 질문은 그냥 사라진 겁니다.
02못 쓰셔서가 아니었다
처음엔 부모님이 앱을 못 다루셔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단계가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사진 한 장을 저에게 보내려면 앱을 열고, 대화방을 찾고, 앨범을 열고, 사진을 고르고, 전송하고 — 그러고도 마지막에 ‘설명 쓰기’에서 막힙니다. 자판을 치는 일이 힘드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사진만 덜렁 보내게 됩니다.
“고마워” 세 글자의 답장도 엄마는 얼마나 어렵게 쓰셨을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고쳐야 할 게 앱 사용법이 아니라 단계의 수라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03그래서 반대로 생각했다
부모님이 하실 일을 ‘찍기’ 하나로 줄이고, 나머지는 AI와 서버가 대신하면 어떨까.
앱을 켜면 카메라가 이미 떠 있습니다. 셔터를 누르면 AI가 사진을 열두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제품명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카테고리에 맞는 ‘의도 배너’를 최대 네 개까지 띄웁니다. 부모님은 그중 하나만 누르면 됩니다.
자판을 치지 않아도 “이거 사도 될까?”, “이게 뭔지 알려줘” 같은 맥락이 사진에 붙어 전달됩니다.
‘엄마의 사진’ 소개 영상. 찍는 것 하나로 끝나는 흐름을 담았습니다.
04프로토타입을 드리고 알게 된 것
대충 만든 프로토타입을 엄마 휴대폰에 깔아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하루에도 몇 장씩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마다 질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알게 된 건 이겁니다.
엄마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게 궁금하셨구나. 저에게까지 오던 질문은 정말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구나.
나머지 십분의 구는 물어보기 번거로워서, 자판 치기가 어려워서, 전화하기 미안해서 그냥 사라지고 있던 겁니다. 앱이 한 일은 새로운 욕구를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질문이 지나갈 길을 터준 것이었습니다.
이걸 확인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식약처 공공데이터와 연동해 식품·건강기능식품은 인증 정보까지 함께 안내하도록 했고, 사진이 잘못 나온 경우에는 위트 있는 답변을 남기도록 했습니다.
05엄마가 앱을 계속 쓰신 이유
알림 기능과 함께, 가족이 확인했다는 걸 되돌려주는 기능을 넣었습니다. 사진 아래에 좋아요 · 봤어요 · 궁금해요 버튼이 있고, 누르면 사진 아래에 이렇게 뜹니다.
아빠, 상우 확인함
기능 목록으로 보면 사소한 한 줄입니다. 그런데 부모님께는 그 줄이 앱을 계속 쓰는 이유가 됐습니다. 내가 보낸 게 가닿았다는 확인. 그게 없으면 사진을 보내는 일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텍스트가 오가는 메신저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평소 무슨 사진을 찍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고 안부를 전하는 역할은 확실히 했습니다.
06디지털 소외는 어디서 생기는가
신청서를 쓰면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이 이겁니다.
디지털 소외는 기기가 없어서, 또는 기기를 못 다루셔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연결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때 생깁니다.
부모님은 받기만 하고 보내지 못했습니다. 보내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기기는 이미 손에 있었고, 사진도 찍을 줄 아셨습니다. 막힌 건 보내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엄마의 사진’은 그 관찰에서 출발했습니다.
07신청서를 쓰며 정리된 것들
기능을 만들 때는 그냥 필요해서 넣은 것들이, 신청서에 ‘차별점’이라는 항목으로 쓰려니 비로소 이유가 정리됐습니다.
회원가입도, 아이디도, 비밀번호도 없습니다. 자녀가 가족방을 만들면 여섯 자리 숫자가 나오고, 부모님은 그 숫자만 한 번 입력하면 끝입니다. 이후 인증은 그때 발급된 비밀키로 자동 처리됩니다. 어르신 대상 서비스에서 계정 생성은 그 자체로 이탈입니다.
분류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사람의 말로 되돌려 줍니다. “영양제 같아요”, “귀여운 애기네요”처럼요. 확신이 없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모르면 조용한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AI가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것과 검증된 출처를 인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부모님이 드시는 약과 영양제를 다루는 서비스라 더 그렇습니다. 읽히지 않는 글자는 추측하지 않고 비워 둡니다.
누가 확인했는지 이름이 사진 아래에 표시되고, 읽지 않은 사진과 반응은 앱 아이콘에 숫자로 뜹니다. 되돌아오는 신호가 안부가 되고, 재미 요소가 됩니다.
예쁜 UI보다 실제로 쓰시는 분의 기준에 맞췄습니다. 버튼은 58픽셀 이상, 시스템 글자 크기를 200%까지 키워도 화면이 깨지지 않도록 검증했습니다.
- 아이템
- 엄마의 사진 — 부모님이 사진 한 장만 찍으면 AI가 궁금한 정보를 알려주고 버튼 한 번으로 가족에게 전달해주는 시니어 전용 카메라앱
- 분야 · 지역
- IT · 인천 / 멘토 기관 인하대학교 / 팀원 없음(1인)
- 진행 상태
- 아이디어 단계 아님. 2026년 7월 12일 서버 착수 → 7월 27일 구글 플레이 출시 → 현재 v1.3.1, 여덟 차례 업데이트. 애플 앱스토어에도 등록
- 수익 모델
- 사용자 무료. 재가 돌봄기관 구독 · 통신사 시니어 요금제 부가서비스 · 지자체 돌봄사업. 광고 없음, 데이터 판매 없음
수익 모델을 쓰면서 한 가지는 분명히 했습니다. 광고는 넣지 않습니다. 어르신이 광고를 기능으로 오인해 누르는 사고가 실제로 흔하고, 그 순간 가족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사진과 가족 정보를 활용한 데이터 판매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 서비스가 없애려는 장벽을 스스로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용은 사진 한 장당 약 0.3원입니다. 응답 시간 1초를 지키면서 이 단가를 맞추기 위해 출력 토큰을 제한하고 응답 구조를 스키마로 강제했습니다. 공용 호스팅에 phpMyAdmin도 없는 환경에서 만들었는데, 그 제약이 오히려 비용 구조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 01부모님이 못 쓰시는 게 아니라, 단계가 많은 것이었습니다. 고쳐야 할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설계였습니다.
- 02저에게 오던 질문은 실제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번거로워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 03기능 목록의 사소한 한 줄(“아빠, 상우 확인함”)이 계속 쓰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만들기 전엔 몰랐습니다.
- 04디지털 소외는 기기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 방향의 문제입니다. 보내는 길과 돌아오는 길을 함께 열어야 합니다.
- 05지원서는 심사를 위한 문서이기도 하지만, 만든 사람이 자기 서비스를 처음으로 남의 눈으로 보게 되는 문서이기도 했습니다.
16년 동안 남의 브랜드를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이번 건은 제 이름으로 내놓고 직접 운영하며 계속 고쳐 나가는 첫 번째 일입니다. 아직 매출도 사업자 등록도 없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오늘도 사진을 보내십니다.
엄마는 찍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AI가 합니다.
광고 없음 · 로그인 없음 · 6자리 숫자로 연결. 부모님 휴대폰에 하나 깔아드리세요.
이 앱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따로 정리해뒀습니다 · 손바닥에 메모하는 엄마를 위해, 앱을 하나 만들었다 — 개발기